1일 1창작 챌린지를 시작할 때, 나의 목표는 단순했다. 글쓰기 실력을 키우고, 매일 하나라도 창작물을 남기자는 마음이었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숱하게 들어왔기에, 매일 기록하는 루틴을 만들면 언젠가 성장하겠지 하는 기대가 컸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직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했다. 오늘도 한 줄을 썼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하려 했다. 감정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거나, 기록을 통해 나를 이해해보자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상한 변화를 느꼈다. 그날의 기분을 한 문장으로 쓰고 나면, 마음 한구석이 시원해졌다. 사진을 찍으며 ‘이 장면이 마음에 남는 이유가 뭘까’라고 되묻게 되었고, 짧은 낙서를 하면서도 ‘왜 이런 선과 색을 선택했지?’라고 내 마음을 탐색하게 되었다. 처음엔 기록이 습관을 만드는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점점 기록이 내 감정의 움직임을 드러내는 창이 되었다. 매일의 기록이 쌓일수록, 그것은 단순한 창작 습관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매일의 기록이 감정을 추적하는 지도가 되다
매일 기록을 하다 보면, 하나의 패턴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한 달, 두 달 기록이 쌓일수록 내 기분의 흐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예를 들어, 월요일마다 ‘피곤하다’ ‘몸이 무겁다’는 문장이 반복되었다.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상대적으로 평온하다는 기록이 많았고, 금요일 밤에는 ‘지쳤지만 마음은 가볍다’는 감상이 자주 적혔다. 주말에는 불안하다는 문장이 종종 등장했다. 아무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고만 생각했던 토요일 아침의 무기력감도, 기록을 통해 패턴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사소하게 넘겼던 감정들이, 매일 기록 속에서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글, 사진, 그림 어느 장르로 남겨도, 감정은 분명하게 기록 속에 묻어났다. 예를 들어, 그림에서 검정과 회색을 자주 사용한 날을 다시 보면, 대체로 그날은 에너지가 바닥나 있거나, 내 안의 우울을 감당하기 힘든 날이었다. 무심코 찍은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퇴근길에 찍은 어두운 길, 텅 빈 지하철 좌석, 흔들린 야경 같은 사진들은, 그날 내 기분의 농도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의 기록이 감정의 지도로 바뀌자, 나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기분이 가라앉는 날에도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기보다는, ‘아, 지금 이 시기에는 원래 이런 흐름이 있었지’ 하고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기록이 만들어준 감정의 지도 덕분에, 기분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창작이 감정을 치유하는 시간이 된 이유
처음에는 매일의 기록을 ‘해야 하는 일’로 여겼다. 하지만 기록이 감정의 지도가 되어가면서, 기록하는 시간이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하루를 끝내며 글을 쓰면, 문장을 다듬어가면서 내 감정도 함께 정리되었다. 어떤 날은 울컥한 마음이 글 속에서 터져 나와 눈물을 흘리기도 했고, 어떤 날은 사진을 고르며 ‘그래도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었잖아’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는 날에는, 감정의 결이 조금씩 풀려가는 것을 느꼈다. 선을 긋고 색을 칠하는 반복 속에서, 내 마음도 조용히 가라앉았다.
이렇게 창작은 단순히 결과물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내 감정을 바라보고 다독이는 시간이 되었다. 글, 사진, 그림이라는 장르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오늘의 감정을 꺼내어 바깥으로 표현한다’는 행위였다. 표현하지 않으면 감정은 마음속에서 무거운 돌처럼 가라앉아 있지만, 창작이라는 통로를 통해 꺼내면 조금은 가벼워졌다. 감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감정의 존재를 인정하고, 표현하고, 기록했을 때 더 이상 그것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었다.
하루를 기록으로 마무리하는 습관은, 내 삶의 안전지대가 되었다. 감정이 아무리 거칠고 복잡해도, 기록할 수 있으면 견딜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의 창작은, 감정을 치유하고 나를 다시 일으키는 도구가 되었다.
감정의 지도가 내게 알려준 것들
지금도 나는 매일 기록한다. 그리고 기록 속에서 내 감정의 지도를 본다. 이 지도는 나를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덕분에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에도, ‘나는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매일 기록을 하면 감정의 흐름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내려간 기분은 반드시 다시 올라왔고, 올라간 기분도 언젠가는 다시 내려왔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었다.
감정의 지도는 내 하루의 리듬을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기분이 우울하면 무조건 나를 탓했다. ‘왜 이렇게 기분이 처지지?’ ‘난 왜 이렇게 약하지?’ 하고. 하지만 지금은 안다. 이 흐름은 나의 일부일 뿐이고, 그것을 기록하면 두려움은 조금씩 사라진다는 것을. 기록이 감정의 지도가 되어준 이후, 나는 나를 더 자주 이해하고, 덜 자주 미워하게 되었다.
결국 창작은 내 감정을 드러내는 도구이자, 그 감정을 추적하고, 이해하고, 돌보는 가장 개인적인 방법이었다. 1일 1기록, 매일의 창작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결과물이 아니라 이 감정의 지도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는 매일 이 지도를 그려갈 것이다. 나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나를 살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