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창작은 누군가에게 보여줘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글을 쓰면 블로그에 올리고, 사진을 찍으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그림을 그리면 스토리에라도 공유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만든 결과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SNS 피드 속 좋아요와 댓글이 창작의 증명서라도 되는 것처럼, 하루라도 업로드하지 않으면 조급하고 불안했다.
이 믿음은 특히 SNS 활동을 창작의 연장선으로 삼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감각일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누군가의 반응은 나에게 힘이 되었고, 더 잘하고 싶게 만드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SNS에 올리기 위해 창작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쓸 때도 ‘이 문장이 좋아요를 많이 받을까’를 의식했고, 사진을 찍을 때도 이 각도가 더 반응이 좋겠지를 계산했다. 그림을 그릴 때도 이 색감이 대중적일까를 고민했다. 그렇게 창작의 중심은 점점 나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으로 옮겨갔다.
비공개 창작이 처음엔 두려웠던 이유
처음 비공개 창작을 시도했을 때,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이걸 아무도 안 본다면, 내가 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허무감이 밀려왔다. 매일 써온 글을 폴더 속에만 두자니, 존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좋아요도, 댓글도, 공유도 없는 글이라니. 이렇게 남겨도 되나 싶었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스마트폰 갤러리 안에만 두면, 언젠가 잊혀질 것 같았다. 그림 또한 스케치북에만 남아 있으면,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뿌리를 들여다보니, 나는 창작 그 자체보다 인정받는 나를 더 중요시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타인의 인정은 소중하다. 반응은 나를 기쁘게 하고, 계속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창작을 지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결국 창작의 가장 깊은 동력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나는 비공개 창작을 통해서야 비로소 체감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기록이 준 자유
비공개 창작을 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글을 쓸 때, 더 이상 문장마다 ‘이게 공감을 얻을까’를 고민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을 꺼내놓았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아도, 논리의 비약이 있어도, 아무도 보지 않으니 괜찮았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글이 훨씬 솔직해졌다.
사진도 마찬가지였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땐 보정과 구도를 끝없이 고민했지만, 비공개 폴더에 담는 사진은 달랐다. 흔들린 사진, 초점이 나간 사진, 대상을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사진도 그대로 남겼다. 그것들은 내 감각의 조각이었다. 그림도 SNS에 올릴 때는 ‘완성작’만 올렸는데, 비공개 창작을 하면서부터는 연습 낙서, 선 연습, 실패한 색감 실험까지 다 모았다. 그 기록들이 쌓이자,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변하고 성장하는지 보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기록이 주는 자유는 생각보다 크고 넓었다. 그것은 나에게 ‘표현의 안전지대’를 만들어주었다. 실패해도 괜찮고, 못나도 괜찮고, 지워도 괜찮았다. SNS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창작의 모든 과정이 자유로워졌다. 좋아요가 없어도, 그 기록은 내 안의 세상을 조금씩 확장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창작의 본질
이제는 안다. 창작은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아가게 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것을. 물론 여전히 SNS에 올리는 즐거움은 있다. 누군가의 공감, 피드백, 좋아요는 여전히 나에게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창작의 이유는 아니다. 비공개 창작을 하면서, 나는 다시 창작의 본질로 돌아왔다. 쓰고 싶어서 쓰고, 찍고 싶어서 찍고, 그리고 싶어서 그리는 것. 그 단순한 이유가 가장 강력한 창작의 동력임을 깨달았다.
비공개 창작은 나를 가꾸는 은밀한 정원이 되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지만, 나는 매일 물을 주고, 씨앗을 심고, 자라나는 것을 본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어질 때도 있겠지만, 보여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이 정원은 나를 살리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자유 속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은, SNS 반응을 의식하며 만든 결과물보다 훨씬 더 단단하고 깊이 있었다.
SNS에 올리지 않아도 괜찮다. 창작의 가치는 좋아요의 숫자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만들었다는 사실 안에 있다. 오늘도 나는 비공개 폴더를 열고, 아무도 모르는 글을 쓰고, 사진을 고르고, 낙서를 한다. 그 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시간이다. 보여주지 않아도, 기록하지 않아도, 창작은 이미 내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창작하는 사람이다.